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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 2012 - 57
시행일자 : 2012 . 7. 5.
수 신 : 총회장
참 조 : 학생신앙지도위원장
제 목 :
총회 상정안건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지도방향에 대한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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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위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래와 같이 부산노회 제109회 제2차 정기노회(2012.4.9.~10 대신동교회당)에서 결의하여 총회에 상정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안건 제목:‘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지도방향에 대한 문의
⦁제안 설명:
우리 총회산하에 있는 SFC(학생신앙운동)는 그 강령의 시작을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우리의 신조로 한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SFC를 지도한다고 하는 것은, 그 강령을 제대로 성취하는가에 대해서 살펴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강령의 초두에 있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숙지하며 또한 그대로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본 총회의 존재이유들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취지로 본 노회 산하에 있는 SFC를 지도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어 다음과 같이 문의하오니 살펴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는 표현 중 “전통적”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지도해야 합니까?
제안설명: 한명동목사가 SFC강령을 처음으로 제정하였을 때는 최소한 1949년 이전입니다.이때는 미국장로교회내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개정문제가 일단락 난 이후(1903년)로 45년이나 지난 후입니다. 그 당시 그 개정에 반대했던 정통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적 영향으로 1929년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개교하게 되었고, 그 개정을 거의 전격적으로 거부한 사람들에 의해서 정통장로교회(OPC)가 조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한 박윤선목사의 고신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하면,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를 강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신총회(1992년)에서는 원래의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에는 없던, 34장(성령에 관하여)과 35장(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하여)이 추가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받아들이고, 그 산하에 있는 SFC의 강령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도지침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SFC는, “개정되지 않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가르키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그 강령으로 하여 지도해 왔고, 이 SFC를 지도해야 할 노회(총회)는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교리표준으로 인정하는, 어찌보면 아주 모순되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강령으로 하는 SFC지도방향에 대해서 혼선을 겪게 되어서, 아예 이런 모순을 의식하면서도 묻어두거나, 표면적으로는 “개정되기 이전”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가르치거나, 또는 총회의 교리표준으로서 자리잡았지만 그 자신의 강령에 있는 신조와는 차이가 있는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가르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신앙과 삶의 일관성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신앙이나 SFC정신에 있어서도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에, SFC강령을 총회(노회)의 교리표준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전통적”이라는 단어를 아예 삭제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SFC는 앞으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개정의 기본적인 정신을 따라서 그 방향으로 지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제안설명: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03년 당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하였던 사람들(Charles Briggs, Phillip Schaff 등.)은 이런 개정작업이야말로 시대적인 요청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이 중 Phillip Schaff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7세기 작품으로서 자기들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고, 모든 시대에는 반드시 그 시대에 맞는 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반면, 이들의 개정운동을 반대하면서 저지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사람들(John De Witte, B.B.Warfield 등)은 바로 고신총회와 신학노선을 같이하며 또한 SFC가 지향하고 있는 개혁주의신학을 표방하고 사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3대개혁신학자들 중 한 명으로 알려진 B.B.Warfield같은 이는 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개정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신앙고백서를 알미니안신학화시킨 것입니다. 아니라면 최소한 고백서 속에 알미니안신학의 중심원리를 집어 넣어서 두 개의 상호간 모순되는 요소들을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병행시켜 놓은 것입니다. 두 쪽 모두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도 말입니다.”
이런 우려속에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선언적인 서론 첨가, 본문개정, 그리고 추가라는 방법을 통해서 개정된 결과, 정통개혁신학의 특성을 희석시켜버리고 알미니안화시켜버렸습니다. 그 실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선언적 서론: “선언적인 서론”에서는, 첫째, 3장(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해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작정이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교리와 조화롭게 주장되어야 하고 보편구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였고, 멸망할 사람들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죄인의 죽음도 원치 아니하신다는 가르침과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하며, 멸망당하는 것은 바로 멸망당하는 사람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둘째, 10장 3항의 유아시절에 죽은 자는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본문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선언적 서론”에서의 이런 유권해석의 주장에 의해서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던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그 구원이 인간에게 달린 것처럼 주장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2) 본문수정: 세 군데 본문을 수정하였는데, 첫째, 16장7항의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은 죄된 것'이란 표현을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둘째, 22장3항에서 ‘합법적인 권위에 의하여 부과된 선하고 바른 맹세를 거부하는 것은 죄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셋째,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제거하였습니다(다행스럽게도, 고신총회의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첫째, 둘째번 수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한 세번째 수정사항인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의 제거에 대해서는, 1992년총회에서는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한 반면, 이번 2011년총회에서는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직술함으로, 미국장로교회의 이런 세군데 본문수정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내용 그대로를 번역하여 받아들인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개정되지 않은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고신총회에서의 차잇점은,바로 추가된 34장과 35장에 있게 되었습니다.
3)추가: 1992년고신총회에서는 34장과 35장을 추가하면서 각각 "성령에 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이번 2011년총회에서는 그 장들을 각각 "성령", "복음"이라고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만, 그 내용과 형식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로 각각 네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알니니안적 보편구원론을 지지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구절은 35장1,2,3항입니다.
(1) 35장1항에는 “버림받은 온 인류에게 충분하고 다 적용되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생명과 구원의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 당하실 때 그 위하여 죽으신 대상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버림받은 온 인류”라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신학의 주장을 함축합니다.
(2) 35장2항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자기의 사랑과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구절로 요한복음3:16과 요한복음6:39,40절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알미니적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요한복음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 하고, 요한복음6:39,40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할 뿐,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 한다는 구절로, 알미니안적 보편구원론 보다는 오히려 칼빈주의적 제한구속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정통적 개혁신학에서는 디모데전서2:4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구절의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은 개별적인 사람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35장2항은 알미니안적 신학의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3) 35장3항은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머무는 자는 허물을 더 악화시키고 스스로의 과오 때문에 멸망한다”고 진술합니다. 이런 진술은 죄인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렸다기 보다는 인간편의 어떤 행위에 달린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죄인의 회개가 필요하지만, 이런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은 채로 회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이런 인상을 갖게 되고, 이런 인상을 갖게 하는 주장이 바로 알미니안신학입니다.
34장의 성령에 대한 진술부분은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보아 크게 문제삼을 것이 없지만, 모든 진술들 각각을 개정되기 이전의 신앙고백서의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그것을 한 군데로 모아두었다는 의미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34장과 35장의 추가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알미니안신학화시키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결론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이런 알미니안신학화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그대로 SFC를 지도하는데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곧, 알미니안신학화된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방향으로 지도해야 하느냐? 아니면, SFC 강령에서 고백하고 있는 대로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곧 정통적 개혁주의신학의 방향으로 지도해야 하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동시에 고백하면 상호모순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모든 것을 모두 다 가르치면서 모순이 없는 것처럼 눈가리고 계속 아웅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야 할 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부산노회장 곽용동목사